김포(金浦)라는 지명은 투금포(投金浦)에서 유래된 것이라 전한다.
고려말엽에, 지금은 서울 강서구 가양동이 된 옛적 양천 궁산(宮山), 공암(孔岩)나루부근 마을에 의좋은 형제가 살고 있었다. 형은 억년(億年)이고 동생은 조년(兆年)이라고 한다. 어느 날 이 형제는 나루에서(감암포란 설도 있음) 금덩어리 두 개를 얻었다. 형제가 그 것을 한 개씩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둘은 다른 길손들과 같이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고 있었다. 강 한가운데쯤 왔을 때 조년이 무슨 생각에서인지 그 금덩어리를 주머니에서 슬그머니 꺼내서 물속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이것을 본 형 억년은 깜짝 놀라서 그 까닭을 물은 즉, 조년의 말이 "형님, 오늘까지 우리 형제간 의리가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된 것도 우리가 다 같이 가난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일한 것이고 그 외에는 아무 것도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큰 왕금덩어리로 부자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면 자연 일도 안 하고 그로 인하여 더 큰 욕심이 생기고 또 나쁜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 형제간의 의리는 갈라지고 서로 믿던 형제가 남남이 안 된다고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니 저는 갑자기 금덩어리가 싫어지고 무서워져서 물에 던졌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형 억년은 이 말을 듣고 "참 네 말이 옮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 금덩어리가 무섭다."하고 그도 곧 금덩어리를 강물에 던지고 말았다. 이 때 나룻배에 탔던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형제간 의리에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리하여 금덩어리를 던진 곳을 투금탄(投金灘) 또는 투금포라 하였는데 이것이 연유가 되어 김포라 칭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지금으로부터 육백년전 고려말기에 조그만 촌락이 있었다. 이 촌락에는 문씨(文氏)자손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 부락이 불노리(不老里)라고 불리어지고 있다.
이 문씨들만이 살고 있는 고을에 어느 효자와 며느리가 살고 있었다. 문 희영이라는 효자는 환갑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님과 매일 나무를 해서 갖다 팔고 그 돈으로 하루하루 먹고 사는 아주 가난한 나무꾼이었다. 그러던 중 아버님이 이름 모를 열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자 아들은 혼자 나무를 해서 장날마다 갖다 팔게 되자 더욱 어렵게 되어 "무슨 돈으로 아버님의 병을 고친단 말인가"하고, 갓 결혼한 처와 밤을 새워가면서 아버님의 병환을 조심스레 보살피며 고심을 하였다. 고심한 끝에 집 뒤에 정한수를 떠놓고 처와 매일 목욕 재계한 후 산신령님께 빌었다. 처와 단정히 50일째 빌던 날에도 병환이 낫지 않았다. 그날도 간호하다가 지쳐 잠이 들었는데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이 동네 앞 만수산(萬壽山)에 올라가면 향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이 향나무 뒤에 좋은 약초가 있으니 달여서 아버님께 드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젊은이는 꿈에서 깨어 곧 산에 가서 약초를 캐어 달여 드리자 금방 일어나 원기를 되찾고 장수하였다 하여 이 마을을 불노리(不老里)라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