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히 흐르는 조강(粗江)물을 굽어보고 수백 길 높이 솟은 애기봉은 애절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병자호란때 일이다. 높새바람의 기세가 봄기운에 밀려 활기를 못 띠던 때, 기생 애기(愛妓)는 봄의 따사로움을 만끽하며 평양감사와의 사랑을 막 피어나는 잔디 위에 수놓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하늘의 시기인가, 노여움인가, 두 사람의 운명을 모질고 슬프게 만든 변란이 일어났다. 북쪽 오랑캐(후의 청나라)의 침략과 노략질로 감사와 애기는 임금님이 계신 한양으로 피난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교통수단이 발달되지 못했으므로 걸어서 수천 리 길을 가야만 했다.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수천 리를 걸어가야 하는 일이 힘겨운 노릇이었지만 감사는 따르는 애기는 참고 견디며 개풍군까지 왔으나, 감사는 오랑캐들에게 잡혀 복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감사와 생이별을 한 애기는 혼자 강을 건너 월곶면 조강리에 머물면서 감사가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했다.
하루하루 더해지는 감사에 대한 그리움으로 날마다 쑥갓머리산(하성면 가금리 소재) 정상에 올라 임계신 북녘을 향해 눈물로 소리치며 애타게 기다리다 병이 들어 죽음을 눈 앞에 두게 되었다. 명재경각(命在頃刻)의 애기는 임을 향한 그리움으로 매일 애타게 기다리던 산정(山頂)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했다.
애기는 유언에 따라 동내 사람들은 애기를 쑥갓머리산 꼭대기에 장사하고 그 산을 애기봉(愛妓峰)이라 불러왔다.
지금 애기봉 정상에는 강 건너 북녘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어서, 실향민들이 향수를 달래려 자주 찾는 망향(望鄕)의 동산이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애기봉은 북녘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이 한으로 맺힌 곳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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