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곶면 석정리는 조선시대까지 통진현 고리곶면 웁정리였다. 이 곳 '돌우물'의 물맛이 좋아 통진현의 원이 이 우물의 물을 기어오게 하여 식수로 사용하였는데 골(고을)의 우물 곧, '골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라고 하다 보니 그 이름이 전해져 주민들은 전래적으로 '골우물'로 불러왔으나. 일제강점기에 민족정기와 역사적 의의를 말살하기 위해 단순히 의미만을 옮긴 '석정(石井 )'으로 고쳤다.
이 '돌우물'에는 전설이 서리어있다. 조선조에 김포 장릉(16대 이조의 부친으로 추존왕인 원종과 인헌왕후의 능)에 양주에서 이 곳으로 개장하여 능 역사(役事)를 할 때, 광중(壙中)을 파니 많은 샘물이 솟구쳐 하관(下 )을 할 수 없어 혼란을 겪던 차에 지관이 수맥을 따라 현 위치(당시는 갯벌이었다고 함)에 도착하여 조그만 샘물을 크게 파헤치게 하니 돌 틈으로 많은 수량이 솟구쳐 나왔고, 그 결과 장릉의 광중에서 솟던 물이 멈춰 능력사를 순조롭게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1787년 무렵 옥과(玉果, 전라도 곡성군 소재) 현감이 우물 옆에서 살았었는데 방문객이 너무 많아 불편하게 느끼던 차에 하인이, 문전적미(門前積米)를 하러 온 중에서 객이 안 오게 하는 묘방을 물으니, 우물 안에 있는 거북형상의 돌에서 그 머리를 깨어 버리면 된다고 하여, 그 말대로 했더니 출입객은 한산해진 대신 곧 그 집이 망해버렸다고 한다.
오봉산은 이 마을의 기안역을 하는 주신의 원천이 서리어 있는 곳이다. 이 곳에는 옛날에 장사가 있었는데, 그가 이 우물에 내려와서 무릎 꿇고 물을 마신 무릎 자국과 지팡이 자국, 소변을 본 자국이 지금도 선명히 남아 있다. 이 우물은 전체가 돌로 되어 있는데 동남간과 동북간에 거북 형상과 용의 형상이 있고, 샘은 동북방간 오봉산 낭맥간방에서 솟는데 수량이 엄청나서 옛날에는 이 근방 못자리를 모두 꾸려나갔다고 한다.
현재도 김포에 유래가 없는 영천(靈泉)을 알려져 경향각지에서 물을 길러 오는 사람이 많다. 1991년 중추절에 부락주민들이 정성을 모아 적연와, 특수강으로 담을 두르고 주변을 정화(淨化 )하여 전설과 함께 자랑스럽게 보전하고 있다.
용연은 월곶면 문수산 북쪽에 있는데 천여년 전, 이 곳은 진철이었고 물오리 나무가 무성한 가운데 못이 있었는데 하루는 홀연히 천둥번개가 치며 폭우가 쏟아지더니 못이 넓어지고 그 못으로 용이 승천했다고 한다. 그후 그 연못을 용연(龍淵)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용연 뒷산에 고려조에 용호사(龍湖寺)가 있었는데 지금은 터만 남았다. 또 용무(龍舞)골에는 기암괴석이 많다. 용연펄은 논으로 개간하여 농사를 짓는데 칠년대한(七年大旱)에도 흉년을 모르는 곳이라 통진현감은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지금은 논이 더 넓게 확장되어 약 50여 정보가 되는데 대한, 홍수에도 용연물은 줄거나 늘지 않는다고 한다.
하성면 전류 1리 앞 산 중턱에 용의 형상을 한 바위가 있었다 하여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은 그 바위를 '용바위'라고 불러왔다.
옛날 이름을 알 수 없는 노승 한 분이 어느 날 이 마을에 홀연히 나타나 목탁을 두드리며 시주를 하고다녔다. 그 때 어는 집에서 노파가 시주하기에 '적선공덕으로 왕생극락하십시오'칭송하고 합장했다.
이 때 촌장이 다가와 노승에게 "다른 집에서도 적선을 했습니까?"하고 묻자, "이 댁에서 처음입니다."하고 대답하니 촌장은 안타깝고 걱정스런 눈빛으로 먼 하늘을 보며 시주할 양식조차 없음을 한탄했다.
노승이 촌장에게 "마을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데도 가난한 이유가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촌장은 연유를 알 수 없다고 한탄했다.
이에 노승은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무릎을 치며 말했다. "옳거니, 마을 지형을 살펴보아야겠군"하며 촌장과 마을 뒷산에 올라 보니 마을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용의 형상을 한 바위가 있었다. 노승은 촌장에게 "저 용의 형상이 마을의 양식을 먹어 치우므로 마을이 가난한 것이요"라고 말하고 마을이 잘 살려면 저 거대한 '용바위'를 부숴야만 한다고 말하고 떠나갔다.
산에서 내려온 촌장은 마을회의를 열어 노승의 말을 전하고 용바위를 부스는 일을 논의했으나 마을 사람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 바위가 부술 수 없어 마을사람 모두가 목욕재계하고 매일 옥황상제께 치성을 드려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이에 옥황상제가 자신에게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아오도록 일관에게 명했다. 일관이 용바위의 행패를 고하자, 옥황상제는 장사를 내려보내 용바위를 부숴, 착하고 부지런한 마을사람들이 소원을 이루도록 했다. 상제의 명을 받은 장사는 무쇠망치로 용바위를 부수고 승천했고, 용바위가 사라지자 마을 사람들은 기뻐하며 더 열심히 일하여 부자가 되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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