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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고개 전설,능안(陵安)의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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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적 전설은 그 지역의 지리상의 특징, 자연현상, 동식물의 특수한 형상, 강, 산, 바위 등 특수한 증거물에 대해 소박한 지식으로 설명한 것이다. 기존의 전설에 후세인들이 설명의 요소를 첨가해서 윤색(潤色)된 내용도 상당 수 있다.
설명적 전설은 지역주민과 자연과의 교섭자, 자연과 문화 사이의 교섭자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그것은 지역주민들의 자기인식의 생활사, 문화사라고 할 수 있다.
전설은 전설일 뿐 정사(正史)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지명 '金浦'의 유래에 대한 전설에서는 양천(陽川)의 전설에 '投金浦(灘) → 金浦'로 전해지지만, 1914년 이전에는 김포, 통진 양천이 각각 별개의 군이었다가 같은 해에 3군이 김포로 통합되었으므로 양천과 김포와는 관계가 없었다. 또한 '投金浦'전설의 시대적 배경은 고려 때로 되어 있다. 그러나, 지명 '김포'가 확정된 것은 신라 경덕왕 때이다.
형제투금(兄弟投金)은 전국적으로 전승되어온 형제우애를 주제로 한 민담(民譚)의 화소(話素) 중 하나로 '금덩이를 물에 던지다' → '金浦'의 전설구조를 만들게 되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전설과 역사 사이의 갈등은 처음부터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천둥고개 전설

서울에서 48번 국도를 따라 내려오다 서울과 김포의 경계를 막 지나면서 조선조에 서해와 서울을 뱃길로 이르려고 운하공사를 하다 중단한 역사를 간직한 굴포천이 있고 그 위에 '판개다리'(판개는 '掘浦의 고유어, '평고'다리는 와전)가 있다. 계속해서 김포 방향으로 1.5km 남짓 달리면 고촌면사무소 소재지인 신곡리 마을에 이른다. 신곡리를 지나 김포읍쪽으로 오려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고개가 있는데, 요즈음 고개를 깍아 낮추고 노폭을 넓히는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천등고개'다. 이 천등고개에는 짧게 전설이 있다.
옛날의 천등고개는 현재의 신곡리와 장곡부락을 잇는 고갯실이 아니라 신곡리마을(현면소재지)과 천등마을(신곡 3리)을 잇는 매우 긴 고갯길로, 첫 고개인 천등고개를 넘으면 또 한 고개를 '덧고개'라 불렀다.
그런데, 이 고개 주변의 산은 그리 험하거나 높지는 않지만 아름드리 수목들로 꽉 찼었고 그 속에는 산적들이 우글거렸기 때문에 주민들은 대낮에도 마음놓고 고개를 넘을 수 가 없었다. 그리하여 신곡리쪽이나 천등마을쪽 주민들이 상대편 마을을 방문하려면 일행이 '천 명'이 모여야 산적들의 피해 없이 안심하고 고개를 넘을 수 있었다고 한다. 천등고개는 '천 명이 모여서 오르는 고개'로 원래 '千登고개'였을 것이나 어느 사이에 변하여 현재 한자로 '天登고개'로 쓰고 있다.
이 고개는 조선조 말에 강화도령이 임금위(철종)에 오르려고 상경하던 길에 행차가 늦는다고 호령하는 소리가 천둥소리 같았다 하여 '천둥고개'로 했다고도 전하고 있고, 성황당도 있는 정감 넘치는 꽤 높은 고개였으나 현재는 공사로 많이 낮아진 채로 옛날의 전설도 잊혀져가고 있다.

능안(陵安)의유래

검단면 마전리 능안에 고분 2기가 있는데 고려왕릉이라 전해진다. 고분 두 개 중에서 어느 것이 왕릉인지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능안에 제청(祭廳)배미라는 논이 있는데 능을 쓸 때, 제청을 지었던 곳이라 전해지며, 그 옆에는 황새모퉁이란 곳이 있다. 마을 앞 만수산 중턱에 송림사(松林寺) 유지(遺地)가 있고 그 옆에 강릉(康陵)고개가 있다. 좌측 50미터쯤에 섬뜰논이 있는데 옛날에 연못섬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능 이름은 강릉이었을 것이며, 그 능에 연유해서 능내( 內) 곶 '능안'이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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